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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번역

등하만필(燈下漫筆)

#일.

#언젠가 민국 23년경이었겠는데, 북경의 몇몇 국립은행의 지폐가 나날이 신용을 얻어서 참으로 욱일승천지세였다. 종래 현은을 고집하던 시골뜨기들까지도 이것이 편리하고 확실하다는 것을 알고 서슴지 않고 이것으로 거래하며 사용하였다고 한다. 다소나마 개명한 사람이면 반드시 ‘특수지식계급’이 아니라도, 벌써 그 무겁고 부패가 큰 현은을 호주머니에다가 넣어 쓸데없이 고생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마 은화에 대하여 특별한 취미와 애착을 가진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다 지폐를 가졌으며, 그것도 본국의 것을 가졌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석하게도 얼마 후에 실연 적지 않은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원세개가 황제가 되려고 하던 해의 일로, 채송파 선생이 북경을 벗어나 운남에 가서 의병을 이르키었다. 그 때에 받은 영향의 하나가 중국, 교통의 양은행의 태환이 정지된 일이다. 태환은 정지되었으나 정부는 상인들에게 종전과 같이 통용하기를 강요할 위력은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상인들도 또 상인의 본령을 발휘하여, 안 받는다고는 하지 않고 잔돈이 없다고 하였다. 가령 수십 수백의 지폐를 가지고 물건을 살 때에는 어떻게 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그저 붓 한 자루, 담배 한 갑을 사는데 일원짜리 지폐를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이것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뿐더러 지폐도 또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면 동전으로 바꾸겠다고 다소 싸게 말해 보나 모다 동전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친척이나 친구한테 현은을 꾸러 가보아도 있을 턱이 없다. 그래서 격을 낮추어 애국주의에 구애되지 않고 외국은행의 지폐를 구하려고 해보았다. 그러나 외국은행의 지폐는 이 때에도 현은과 마찬가지로, 거기서 지폐를 꾸면 진짜 은화를 꾼 것으로 되었다.

#나의 기억으로는 그 때 나의 호주머니에는 아직도 삼사십원의 중국, 교통의 양은행의 지폐가 들어 있었는데, 별안간 가난뱅이가 되어 끼니를 잇지 못하게 되어 매우 당황하였다. 쏘 련혁명 이후 루 ― 불의 지폐를 가지고 있던 부자들의 심정이 똑 이러하였을 것이다. 그저 좀더 심각하고 규모가 컸을 뿐이었을 것이다. 나는 할 수 없이 지폐를 할인하여 현은으로 바꿀 수 없나 하고 탐지해 보았으나, 장은 서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다행하게 그여히 몰래 장이 섰다. 육할 얼마라는 것이다. 나는 귀가 번쩍 뜨여서 반을 파러 치웠다. 얼마 안 있어서 칠할로 올랐다. 나는 더욱 반가워서 전부 현은으로 바꾸어 호주머니가 묵직하게 집어 넣었더니, 그것이 나의 생명의 근량인 것만 같었다. 평상시 같으면 돈 바꾸는 데서 동전 한 잎을 덜 주어도 나는 절대로 그저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무끔의 현은을 호주머니가 뿌듯하게 집어 넣고 저으기 안심이 되어 기뻐했을 때, 문득 딴 생각이 들었다. 즉 우리는 극히 용이하게 노예로 변할 수 있으며, 또 한 번 변해 버리면 그것을 기뻐한다는 생각이다.

#가령 어떤 폭력이, ‘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고’, 인간의 대접을 안할 뿐만 아니라 우마만치도 여기지 않고, 개똥만치도 여기지 않게 되어, 인간이 우마를 부러워하고, ‘난세의 인민은 태평성대의 개만도 못하다’는 탄식이 나오게쯤 되어서, 그런 연후에 비로소 그들을 우마와 비등하게 대접하면, 똑 원대의 법률이 남의 노예를 죽이면 소 한 마리로써 배상하게 하여 모두들 그것에 만족하고 태평성세를 찬송하던 것과 똑같이 만족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대접은 못 받지만 어쨌든 우마와는 비등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반드시 흠정이십사사주석: 欽定二十四史를 배독하지 않어도 좋고, 혹은 연구실에 들어가서 정신문명의 고원함을 탐구하지 않어도 좋다. 어린아이들이 읽고 있는 감략을 잠간 들추어 보던지. ― 그것도 귀찮으면 역대 기원편을 보라. 그것만으로도 ‘삼천여년의 고국’이라는 중국이 역사상에서 옥신각신한 것이 하나의 작란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알리라. 그러나 요새 편찬된 소위 ‘역사교과서’ 같은 데는 도리혀 별로 분명치 않고, 그저 다만 우리들은 이 때까지 퍽 행복이었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국인은 이 때까지 인간의 가치를 전취한 일이 없고, 찍해야 노예가 된 데 불과하고, 현재도 그러하다. 그러나 노예만도 못한 시기가 적지 않았다. 중국의 백성은 중립이라 전시에는 제 자신으로 제가 어느 편에 속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또 어느 편이고 다 속하는가 보다. 강도가 오면 관에 속함인지 물론 살륙 약탈 당한다. 관병이 오면 제 편이겠는데도 불구하고 또 살륙 약탈 당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치 강도편에나 속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이러한 때에 백성은 한 사람의 뚜렷한 군주가 있어, 그들을 백성으로 삼어 주기를 희망한다. ― 그것도 과만하면 그들을 우마로 삼어 제 멋대로 풀을 뜯어 먹게 하고, 그저 다만 그들이 어느 쪽으로 가면 좋은가를 결정해 주기를 희망한다.

#만약 참으로 그들을 위하여 결정해 줄 수만 있다면, 어떠한 노예의 규칙이 정해지든지 물론 ‘황은의 호탕’한 것이다. 가석하게도 잠시 동안도 이것을 정해 주는 이가 없던 시기가 각금 있었다. 그 현저한 것을 들면 오호십육국의 시기, 황소의 시기, 오대의 시기, 송말과 원말의 시기인데, 그들은 으레 이 있는 부역과 조세 이외에, 모다 또 의외의 재난을 입었다. 장헌충의 행패에 이르러서는 너무나 괴상망측하다. 부역과 조세를 하지 않어도 죽이고, 부역과 조세를 하여도 죽인다. 그를 적으로 하여도 죽이고, 항복하여도 죽인다. 노예의 규칙이 여지 없이 분쇄되고 말었다. 이러한 때에는 백성은 한 사람의 새로운 군주가 나타나서 다소나마 그들의 노예의 규칙을 고려해 주고, 재래의 것이든 새로 제정한 것이든간에, 요컨대 일종의 규칙이 있어 그들을 노예의 궤도 위에 올려 놓아 주기를 희망한다.

#‘시일을 어찌 놓칠까보냐. 나는 너와 함께 죽으리라!’ 하는 것은 격분하여 토한 말뿐이고, 실행을 결심하는 자는 별로 없다. 실제로는 군도가 여기저기 이러나 분란을 거듭한 끝에, 한 사람의 비교적 강한 자, 혹은 비교적 총명한 자, 혹은 비교적 교활한 자, 혹은 외래민족의 인물이 나타나서, 어느 정도가 질서가 있게 하여 천하를 수습한다. 그리고 규칙을 제정하여, 어떻게 부역하느냐, 어떻게 조세를 바치느냐, 어떻게 절을 하느냐, 어떻게 성대를 찬송하느냐를 결정한다. 그리고 이 규칙이라는 것은 현재처럼 조삼모사로 변경되는 것은 아니다. 그제서 ‘만백성이 환성을 올린다.’ 여기 딱 맞는 용어를 쓴다면 ‘천하태평’이다.

#발러바추기 잘하는 역사를 꾸밀 때 ‘한족발상시대’ ‘한족발달시대’ ‘한족중흥시대’ 같은 그럴듯한 제목을 내세워 본대야 호의는 참으로 감사하나 표현이 너머 완곡하다. 좀더 솔직한 표현이 여기 있다 ―.

#일. 노예가 되려다가 못된 시대

#이. 잠시 평온하게 노예가 된 시대

#이 일종의 순환이 또 ‘선유’의 이른바 ‘일치일란’이다. 난을 이르킨 인물은 후일의 ‘신민’으로서 보면 ‘군주’를 위하여 길을 띠워 준 자로, 그러므로 ‘성천자를 위하여 구제하였는 것이다.'

#현재는 어떠한 시대로 들어온 것인지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국학자의 국수숭배, 문학자의 고유문명의 찬미, 도학자의 복고에 대한 열성으로 보면, 현상에는 모다 불만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어떠한 길을 걷고 있는가? 백성은 한 번 그 까닭 모를 전쟁에 당면하면, 다소 부유한 자는 조계로 옮겨가고, 부녀자들은 교회당으로 피난한다. 그 이유는 거기가 비교적 ‘평온’하여, 얼마동안은 노예가 되려다가 못된다는 사태에는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복고주의자도, 피난민도, 우자든 현자든간에 모다 지난 삼백년전의 태평성세를, 즉 ‘잠시 평온하게 노예가 된 시대’를 추모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들도 고인과 같이 ‘예전에 이미 있었다’는 시대에 만족할 것인가? 모다 복고주의자와 같이 현재에 불만이며, 삼백년전의 태평성세를 추모할 것인가?

#물론 현재에는 불만이다. 그러나 회고할 필요는 없다. 전면에 또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중국 역사상의 미증유의 제삼 시대를 창조하는 일이, 이것이 현재 청년의 사명이다!

#이.

#그러나 민국 고유의 문명을 찬송하는 사람들은 늘어가고 있으며, 외국인까지 여기 참가하고 있다. 나는 늘 생각하기를, 무릇 중국에 오는 사람으로 골치가 아프고 얼굴이 찌프러지도록 중국을 증오하면, 나는 감히 진심으로 감사하겠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중국인의 살을 뜯어먹으러 덤비랴고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견우보씨는 ‘북경의 매력’ 속에서, 어느 백인이 중국에 왔다가 예정된 체재 기간은 일년이었는데, 오년이 지났어도 북경에 머물러 있어 갈 생각도 하지 않더라는 것을 기술하고 있다. 어느 날 그들 둘이 같치 저녁을 먹었다 ―.

#“둥근 마호가니의 탁자 앞에 앉었으니, 냇물이 쉴 줄을 모르드시 연다러 산해진미가 나오고, 이야기는 골동, 그림, 정치 등에서 시작되었다. 전등에는 중국식의 갓이 씌워저 있어, 은근한 불빛이 고물이 죽 늘어놓아 있는 방안을 담뿍 비최고 있다. 무산계급이니, 프로레타리아 ― 트니 하는 것은 무엇 말러비트러진 것이냐는 듯하다.”

#“나는 일면 중국 생활의 공기 속에 도취되며, 일면 외국인에게 매력이 있는 사물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았다. 원인도 일찌기 중국을 정복하였으나 한인의 생활미에 정복 당하고, 만인도 중국을 정벌하였으나 한인의 생활미에 정복 당하였다. 현재 서양인도 마찬가지로, 입으로는 데모크라시 ― 니 무엇이니 떠들지만, 도리혀 중국인이 육천년 동안에 건설해 놓은 생활미에 미혹되고 있다. 한번 북경에서 사러보면 그 생활의 멋을 이즐 수 없는 것이다. 큰 바람이 불 때의 만장의 홍진도 석 달마다 한 번식 있는 독군들의 전쟁 유희도, 무엇이고 이 중국 생활의 매력을 말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기술에 대하여 나는 현재 그를 부인할 용기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예전 성현은 우리들에게 옛것을 보수하라는 격언을 남기고, 동시에 부녀와 옥백으로써 정복자에 바치는 대연을 준비하였다. 중국인이 노동에 잘 견데고 자녀가 많은 것은 모다 주연의 재료가 되며, 현재 또 우리들의 애국자가 자랑하는 바다. 서양인이 처음에 중국에 들어왔을 때에는 오랑캐라고 불리어, 여러 가지로 거북함을 면할 수 없었으나, 그러나 현재는 이미 시기가 돼서, 우리가 일찍이 북위에 바치고, 금에 바치고, 원에 바치게 된 것이다. 외출에는 자동차가 있고, 여행에는 보호가 따르고, 통행금지에 부닥쳐도 통행자유고, 약탈 당하면 반드시 배상을 받는다. 손미요가 그들을 부짭어 진전에 세운즉 관병은 총을 쏘지 못하였다. 화려한 집 속에서 성연을 향유하는 것은 말해 무엇하랴? 성연을 향유하겠즘 된 때에는 물론 또 중국의 고유문명을 찬송하는 때다. 그러나 우리들의 낙관적인 애국자는 도리혀 희색이 만면하여, 그들이 중국에 동화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고인은 일찍이 여자를 구안의 성보로 하고서 ‘화친’이라고 미화하여 자기를 속이었으며, 현대인은 자녀와 옥백을 노예가 되는 희생으로서 바치고서 ‘동화’라고 미화하여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외국인의 누구고 이미 주연을 향유할 자격을 갖게 된 오늘날, 도리혀 우리들을 위하여 중국을 저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참으로 양심이 있는, 참으로 감복할 인물이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은 벌써 적당하게 배치되어 버러서, 귀천이 있고, 대소가 있고, 상하가 있다. 제가 남에게 능욕 당하면 또 다른 사람을 능욕할 수 있다. 제가 남에게 무러 띠기면 또 다른 사람을 무러 뜯을 수 있다. 한 층 한 층 밀어 내려가면서, 그것을 전환시킬 수도 없고, 또 전환시키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전환시키면 유리한 일도 있지만 또 폐해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고인의 양법미의를 보아보기로 하자 ―.

#“천에 십일이 있고 인간에 십등이 있다. 하가 상을 받들고 상이 신을 받드는 이유다. 그러므로 왕은 공을 신으로 하고, 공은 대부를 신으로 하고, 대부는 사를 신으로 하고, 사는 조를 신으로 하고, 조는 여를 신으로 하고, 여는 예를 신으로 하고, 예는 료를 신으로 하고, 료는 복을 신으로 하고, 복은 이를 신으로 한다.”(『좌전』 소공 칠년)

#그러나 ‘이’는 신이 없어서 몹시 괴로울 것이 아니냐? 걱정할 것 없다. 그에게는 천한 처가 있고 약한 어린아이가 있다. 그 위에 이 어린아이에게도 또 큰 희망이 있다. 타일에 장성하면 격이 올라서 ‘이’가 되어, 또 천하고 약한 처자를 부려먹을 수 있다. 이렇게 죽 연결되어 각각 제 자리를 차지하게 되며, 여기에 감히 말썽을 부리는 자가 있으면 그 죄명은 분수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전 일로, 소공 칠년은 현재에서 보면 까마득하지만, 그러나 복고주의자는 그렇게 반드시 비관할 필요는 없다. 태평의 기색은 아직도 있다. 늘 전재가 있고, 늘 수재 한재가 있지만, 누구 거기에 대하여 크게 외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는가? 전쟁하는 자는 전쟁하고, 혁명하는 자는 혁명하고, 처사는 횡의하고 있지 안는가? 국민에 대해서는 한없이 오만하고 외국인에 대해서는 한없이 유순하다. 이것이 등급의 유풍이 아니고 무엇이냐? 중국 고유의 정신문명은 사실에 있어서는 결코 아직도 공화 두 글자 속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다만 만인이 이미 퇴석하여 전보다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전에 각종의 향연을 볼 수 있다. 소고가 있고 시석이 있고, 편반이 있고, 서양요리가 있다. 그러나 모옥에는 죽이 있고, 길거리에는 턱찌끼가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 소고를 먹는, 몸 값을 이루 따질 수 없는 큰 권력자도 있고, 또 굶어서 다 죽게 된 매근에 팔문식 치이는 어린아이도 있다.(『현대평론』 21호를 보라) 소위 중국의 문명이라는 것은, 기실은 권력자들이 향락하는 인육의 향연을 배설해주는 것을 말한다. 소위 중국이라는 데는 기실은 인육의 향연을 준비하는 부엌을 이름이다. 잘 아지 못하고 찬송하는 자는 용서될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이런 자들은 영원히 저주 받으리라!

#외국인들 중에서 잘 모르고 찬송하는 자는 용서될 것이며, 높은 지위에 있어 호사만 하여, 그 때문에 미혹되어 영성을 망각하고 찬미하는 자도 용서될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두 가지 인물은 용서되지 않는다. 즉 그 하나는 중국인을 열등시하여 그저 예전대로 두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하여 중국의 고물을 칭찬하는 자며, 또 하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달라서 자기의 여행의 흥취를 도어주기를 바래서, 중국에 가면 변발을 보고, 일본에 가면 게다를 보고, 조선에 가면 갓을 보고 하여야지, 만약 복색이 다 같으면 아주 무미할 것이므로, 그래서 아세아의 문명화를 반대하는 자다. 이러한 자들은 모다 증오를 받을 것이다. 랏셀이 서호에서 가마꾼이 미소하는 것을 보고 중국인을 찬미한 것은, 필시 다른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만일 가마꾼이 가마를 타는 사람한테 미소를 던지지 않았다면, 중국은 벌써 전에 현재와 같은 중국이 아니 되었을 것이다.

#이 문명은 외국인을 도취시키었을 뿐만 아니라, 또 일직부터 중국의 모든 사람들을 도취시키어 미소하게 만들었다. 고대부터 후래하여 아직도 많이 있는 허다한 등급은 사람들을 각각 분리시키어, 결국은 타인의 고통을 아무렇도 않게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동시에 각각 저를 위하여 타인을 노예로 사용하여, 타인의 희망을 짱쿠어 먹어, 그리하여 제 자신도 또 노예가 되어 짱쿠어 먹히고 말 운명에 있다는 것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대소 무수의 인육의 향연이 문명이 있은 이래 오늘날까지 배설되어, 사람들은 이 회장에서 사람을 뜯어 먹고, 뜯어 먹히고, 도살자의 우망한 환성으로 비참한 약자의 신음소리를 재도하고 있다. 여자와 어린아이야 말해 무엇하랴.

#이 인육의 향연은 현재도 배설되어 있고, 허다한 사람들이 앞으로 죽 배설해 나가랴고 하고 있다. 이러한 식인종들을 소탕하고, 연석을 뒤집어엎고 그 부엌을 때려부시는 것이, 이것이 현재 청년의 사명이다.

#(1925년 4월 29일, 『분』에서)

작품 정보
저작권 분류
만료저작물
갈래
수필
지은이
루쉰
옮긴이
이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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